제도를 함락한다, 라. 얄궂은 일이로군.
과거에 내가 살던 곳을 공격해야만 하다니……
뭐, 좋아, 그것도 훗날의 얘기지.
지금은 엄숙하게 아릴 계곡으로 향할 준비를 하도록 하겠어……
후우, 몇 번을 봐도 섬뜩하네요. 사람의 피가 흐르는 건……
어라, 말했었죠? 전 피를 싫어해서요.
어쨌든 좀 더 살기 쉬운 세상을 빨리 실현시키고 싶은걸요.
그래서 제가 온 힘을 다할 거냐고 묻는다면 귀찮기도 하지만요……
어라, 말 안 했었나요? 말 안 했을지도. 뭐, 상관없어요.
갑자기 란돌프랑 싸우게 될 줄이야……
나한테는 숙부가 되는데…… 의숙부고, 딱히 마음 쓰이지도 않아.
여기 왔을 때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연옥의 계곡 아릴, 이었나요? 뭘까요, 그건?
이름만으로도 엄청 무섭게 들리는데요…… 저도 가야만 하는 건가요?
처박히는 게 특기인 베르에게 슬슬 집 보는 역할을 맡겨 주세요~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오늘도 이상 없습니다!
후후…… 따라해 봤어요. 어때요?
5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지만, 변해 버리는 것들이 더 많아……
저, 옛날보다, 더 많은, 말, 배웠습니다.
하지만, 포드라 말, 이야기한다, 어렵습니다.
듣다, 읽다, 쓰다, 완벽, 합니다만. 그것, 포드라, 옥에 티, 라고 합니까?
선생님, 감사, 합니다. 저, 언젠가, 유창하게, 말하다, 실현합니다.
네, 정진, 합니다.
퍼거스에는 아직 디미트리가 살아 있다고 굳게 믿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있어.
……우리 아버지도 그중 하나지.
흥, 현실을 직시 못 하는 거야. 녀석은 이미 죽었어…… 어디에도 없다고.
연옥의 계곡 아릴…… 아릴이라…… 너무 싫다…… 가고 싶지 않아……
……선생님, 아릴에 가 본 적 있어요? 혹시 있다면 알 텐데……
아릴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덥다구요! 추운 나라 출신인 우리한테 너무 가혹해요!
뭐, 그런 땅이니까 적들도 얼씬거리지 않지만……
우리는 이제 학생이 아니지만~ 역시 책을 읽는 건 중요하지.
다음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실려 있을지도 모르고……
응, 정말 그래~ 전쟁이 끝나고 나서 사관학교를 다시 열면 좋을 텐데~
후훗, 참, 너무하네~ 나도 훈련, 열심히 하고 있어~
수도원이 엉망진창이 된 건 정말 안타깝지만……
서고랑 책이 무사해서 다행이야~
선생님, 주디트님을 믿어도 정말 괜찮을까요?
동맹 안에서도 이래저래 다툼이 이어지고 있을 텐데……
병력과 물자를 거의 다 지원해 주겠다니 너무 통이 큰 것 아닌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굉장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요……
저의 본가인 갈라테아 가문은 다프넬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
듣자 하니, 형제끼리 상속을 두고 다투다가 집안이 둘로 나뉘었다고 하더군요.
같은 핏줄이면서 다르게 살아온 자들이라,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았죠.
다프넬 가문의 당주인 주디트님과도 딱히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짜로 밥을 나누어 준다니, 주디트씨는 좋은 사람이구나아.
여신님보다도 여신님 같아.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만난 적이 없으니까 잘 모르지만, 분명 예쁘고 상냥한 사람일 거야아.
그래? 뭐, 밥을 준다면 여신이라도 마신이라도 상관없지만.
연옥의 계곡…… 들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기대되네요…… 대체 어떤 풍경일까요?
위험할까요? 그렇다고 해도, 빨리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요.
확실히, 이름부터 더워 보이는 이름이네요. 연옥이라고 불릴 정도면, 뭔가 이유가 있겠죠?
연옥의 계곡 아릴은, 3개의 귀족령 경계가 맞물려 있는 곳에 있어요.
왕국 프랄다리우스가와 갈라테아가, 그리고 동맹의 다프넬가예요.
북방의 프랄다리우스령 내에서는 구 왕국군과 새로운 공국군이 교전중이라더군요.
연옥의 계곡…… 연옥의 계곡……
예전에, 아릴의 전설을 기록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아, 아니에요. 아릴의 전설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주디트씨의 무용담을 오빠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말이죠~
아무도 손도 못 대고 있던 날뛰는 말을 눈빛 하나로 제압했다던가.
도발해 온 팔미라의 장수가 말로 져서 도리어 울면서 사과했다던가~
뭐~ 어쨌든 든든할 것 같네요~ 함께 싸워 준다면 좋겠는데~
더는 교사도 학생도 아닌데, 모두들 당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네.
뭐, 나도 그렇지만. 당신은 어떻게 불리는 게 좋아?
그 호칭이 훨씬 익숙할 테니.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선생님.
그렇군. 그럼 불러 줄까? ……아냐, 뭔가 쑥스러워서 못하겠다.
그 연옥의 계곡에서 원군을 넘겨준다니, 꽤나 괜찮은 생각이군.
확실히 그 작열하는 땅이라면 사람들도 접근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는 건 우리도 매한가지다. 준비는 게을리하지 말도록.
겨우 5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고 말았네요.
왕국은 반쯤 제국의 것이 되어 버렸고, 동맹에서도 자잘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고요……
……그래도 여기서 올려다 보는 하늘만큼은 그때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네요.
어머? 으음, 그러네요. 5년 전에도 분명 즐거웠으니까요.
네…… 아버지, 어머니와 봤던 하늘이에요. 무심코 어제 일처럼 떠올리게 된답니다.
어머나? 선생님은 모르시지 않나요……?
흐음, 수도원 보수도 꽤나 진행됐군. 기쁘기 그지없네.
이곳에 돌아왔을 때는 어떻게 되려나 싶었다만……
대성당 재건만 이루어진다면 금방 예전 모습을 되찾겠지.
옛날 학생이 죽었단 얘기를 들으면 역시 가슴이 아파……
하지만 제국과 전쟁을 벌이는 이상, 앞으로도 피할 수 없는 길……
각오를 다지고 싸울 수밖에 없어. 그게 전 교사의 의무겠지, 분명.
원군을 인수받으러 가는 것뿐이라 해도 만일의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언제 어느 때라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늘은 실컷 무거운 검을 휘둘러 무언가를 베어 보실까!
그대도 어떤가? 함께 검을 휘두르지 않겠나!
"다프넬의 투사"에 대한 소문은 들어 본 적 있어.
수많은 무용담이 진실이라면 그 이상 의지할 만한 상대는 없겠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꼭 한번 검을 겨뤄 보고 싶은걸……
뭐, 문제는 원군과 합류할 수 있느냐야. 아무 일 없이 끝나면 좋을 텐데.
적의 첩자가 많아. 당신도 조심해.
수상한 녀석은 곧장 붙잡아 두라고.
……안 그러면 어떡하려고?
이해가 빨라서 좋군. 부탁할게.
온실 청소랑 화단 손질…… 서고 정리랑 빨래도 해야지.
그래도 이게 제 일이니까요.
안 돼요. 왜냐면 이건 레아님께서 제게 맡겨 주신 일이니까요.
레아님이 안 계시더라도 제가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당신은 좀 더 다른,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오늘도 이상 없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원정을 가시는 겁니까? ……아닌가요? 아아, 원군 인수로군요.
수도원은 제게 맡겨 주세요! 여기서 착실하게 눈을 번뜩이겠습니다!
여기서는 얻을 수 없는 물건도 지하에 가면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가르그 마크의 지하를 모르신다고요? 그곳은 지상에 머무르지 못하는 이들의 낙원이죠.
어비스 녀석들…… 매일 문제나 일으키고 말이야.
차라리 가르그 마크의 지하를 통째로 소탕해 버리면 좋을 텐데……
가르그 마크 북쪽에는 구 왕국 제후였던 카론가와 갈라테아가가 있습니다만……
영지를 제국에게 침식당하면서도 간신히 중립을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영지의 수비에만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제국 측도 세게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겠죠.
다프넬가는 10걸의 정통을 이은 명가로 성교회와 옛날부터 친밀한 관계야.
수많은 무용담으로 알려진 주디트님도 경건한 세이로스 신도라고 들었고 말이야.
주디트님이라면 분명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실 거야.
원조를 받으면 식량에도 여유가 생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요……
식량만큼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원군을 인수하면 그만큼 필요한 식량도 많아지니까요.
퍼거스 공국이 세워지면서 왕국은 실질적으로 망했다고 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구 왕국에 소속됐던 제후 대부분은 이미 제국의 산하에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아직 굴하지 않은 프랄다리우스가 같은 곳도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겠지요……
최근 5년간, 제국병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조용히 지내 왔습니다.
이제야 드디어 대수도원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감격스럽습니다……
멀리까지 도망친 수도사들도 언젠간 돌아오겠지요.
연옥의 계곡이라…… 겉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경계해서 나쁠 건 없지.
왕국 제후는 국경 주변의 동세에 민감하니까 초동 속도는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뭐, 일이 수월하게 풀리면 행운……인 것쯤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어.
주디트가 원조해 줄 거라며? 그 사람을 만나는 게 몇 년 만인지.
지금은 투사라고들 부르지만 옛날엔 지금이랑 느낌이 또 달랐어.
글쎄…… 어렸을 때 본 게 다야. 동맹 제후의 무도회에 왔었거든.
하하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어렸을 때 본 게 다라고.
내 눈엔 동맹 귀족들 중에서 두 번째로 눈부셔 보였지. 첫 번째? 비밀이야.
아릴까지 행군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사양하고 싶네요……
원군만 인수 받는 건데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요?
……저만 남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달갑지 않네요.
……제 힘이 필요하신가요? 그, 그럼 어쩔 수 없죠……
하다못해 행군은 밤중에만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연옥의 계곡이면 거기지? 일 년 내내 불타오르는 땅.
하피는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서 마을을 나왔는데……
어째 가는 곳마다 전쟁이 목적이라 헛웃음이 나와.
아쉬운 대로 풍경이라도 구경할까. 전쟁을 얕보지 말라며 혼날 것 같지만.
……앗, 위험했어. 하마터면 한숨이 나올 뻔했다고.
어머, 선생님. 요즘 어때? 벌이는 잘되어 가?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래 봬도 일하는 중이라서. 미안.
사방이 뒤숭숭해서 행상인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얼른 다들 웃으며 장사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어비스? 선생님, 그런 곳에 흥미가 있어?
가르그 마크의 지하에 펼쳐진 고대 유적…… 그게 어비스야.
멋대로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짐작대로 저마다 사정이 있는 사람뿐이지.
제대로 된 상인은 접근하지 않는 곳이니까 선생님도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이곳은 오늘도 이상 있습니다.
5년 전의 전투에서, 저희와 함께 어비스를 지켜 줬던 기사가 있습니다.
지상의 동태를 살피고 오겠다며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지만요……
다시 돌아온 세이로스 기사단 중에도 그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가르그 마크를 근거지로 삼던 도적단은 어비스에도 몇 번이나 손을 뻗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패거리와는 다릅니다. 단호히 거부하고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특히 하피씨가 힘을 써 주셨어요. 덕분에 지하는 몬스터의 소굴이라 불리게 되었죠……
대수도원이 붕괴된 이후 교단의 지원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기술은 없지만 거동할 수 있는 자는 지상으로 일을 하러 나가곤 합니다만……
매일 풀칠하는 게 고작입니다. 어떻게든 서로 도와 버티고는 있습니다만……
당신, 살아 있었구나. 가르그 마크가 함락됐다길래 죽은 줄로만……
나? 나는 왕국으로 가려다가 별점이 불길해서 서둘러 돌아왔어……
그 뒤론 동맹령 내를 전전했지. 이곳도 5년 만에 온 참이야.
……! 당신은 제랄트님의…… 그렇군요…… 어머니를 많이 닮았네요.
당신의 부모님과는 안면이 있습니다. 당신과도 꼭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지요.
보잘것없는 수도사입니다. 당신의 부모님과는 안면이 있지요.
그러나……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수도원을 잠시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만.
그녀의 묘지에 바칠 꽃을 대신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신이 준비한 꽃이라면 그녀도 분명 기뻐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아아…… 이 꽃은 그녀가 생전에 좋아하던 꽃입니다.
……이제 여한이 없군요.
자, 저는 슬슬 가 보겠습니다 벨레트 선생님, 부디 건강하시길.
그녀의 몫까지 제랄트님을 소중히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