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결판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나는 있어.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아니겠지.
직접 싸우고, 요란하게 목숨을 잃고, 그때서야 비로소 패배를 이해하지.
패배하기 전에는 졌음을 인정하고 따르지도 못 해.
……필요한 희생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말야.
그래도 진 것 정도로 따를 거라면 처음부터 검을 잡지 말라고 하고 싶어.
어떻게든 미르딘대교 확보에 성공했군요.
친제국파인 글로스터 가문과도 본격적으로 연계할 수 있겠습니다.
동맹을 지키는 클로드의 책략에는 이미 대책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새로운 책략으로 대응하기 전에 디아도라 침공을 서둘러야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당신의 학생이 아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
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래, 선생님도 마찬가지구나. 그리고 답은 찾지 못 했겠지. 안 그래?
그건 정말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다른 길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하지……
그래…… 선생님은 강하구나.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다.
후우, 몇 번을 봐도 섬뜩하네요. 사람의 피가 흐르는 건……
어라, 말했었죠? 전 피를 싫어해서요.
어쨌든 좀 더 살기 쉬운 세상을 빨리 실현시키고 싶은걸요.
물론, 귀찮기 짝이 없지만 저도 도울 생각이고요.
어라, 말 안 했었나요? 말 안 했을지도. 뭐, 상관없어요.
클로드 녀석, "원탁의 귀신"이라 불린다면서?
젠장~ 나도 멋있는 이명 갖고 싶다!
디아도라에서 녀석을 해치우면 나한테도 무언가 이명이 붙으려나.
보아라, 녀석의 책략에 맞서는 나의 책략을! 이른바 아무것도 안 하는 「무위무책」이다!
클로드씨가…… 어떤 분이셨더라. 어, 아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음, 그런데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얼굴을 마주한 기억이 별로 없거든요.
뭐, 아무렴 어때. 모르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해서…… 예? 안 된다고요? 그럴 수가!?
……전투에서 이기면 기쁘고 동료가 무사하면 행복해요.
반면에 적의 죽음은 괴롭고 아는 얼굴이라면 배로 괴롭지요.
하아…… 그냥 가극단에 남아 있을 걸 그랬나 봐요.
그럼 좋겠는데 말예요. 제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전 제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후회하지 않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세요, 선생님.
저, 옛날보다, 더 많은, 말, 배웠습니다.
하지만, 포드라 말, 이야기한다, 어렵습니다.
듣다, 읽다, 쓰다, 완벽, 합니다만. 그것, 포드라, 옥에 티, 라고 합니까?
선생님, 감사, 합니다. 저, 언젠가, 유창하게, 말하다, 실현합니다.
네, 정진, 합니다.
……클로드 녀석. 꽤 거창한 별명으로 불리는 모양이던데.
이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건 좋아. 그런 상대를 이겨야 제맛이지.
녀석이 어떤 책략으로 나올지 벌써부터 아주 기대가 되는군.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음식 가격이 단번에 껑충 뛰어 버렸어요……
그렇다고 들여오는 음식의 양을 쉬이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리가 전쟁에 진다면 돈을 아껴 봤자 다 소용없잖아요.
……지금, 가장 힘겨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거리 사람들이겠죠.
배가 고프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니까요.
수상 도시 디아도라……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들었습니다.
기왕 간다면, 전쟁 같은 게 아니라 여자 친구랑 둘이서 여행으로 가고 싶은데.
엇, 저랑 당신이랑? 으음…… 차마 그런 발상은 못 했네요……
엇, 정말로요? 와~! 자, 그럼 무조건 살아남아야겠네요.
앗하하하, 선생님은 너무해……
꽃은 정말로 강하구나~
대수도원 밖에서는 전쟁이 계속되는데 그런 것에 상관없이 꽃을 피우잖아~
날이 따뜻해지면 더 많은 꽃이 필까……
디아도라…… 저, 계속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퍼거스의 거리는 방어 시설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데가 많거든요.
"물의 도시"라는 이름만 들어도 왠지, 세련된 느낌이 난다고 할까.
언젠가 함께 놀러 가요, 선생님. ……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라도.
다프넬 가문 주디트님의 최후…… 적이지만 훌륭했습니다.
그분과 손을 잡고 나아가는 길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래요.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겠죠.
예…… 하지만 이미 지난 일. 아무리 슬퍼해도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죠……
미르딘대교를 제압함으로써, 글로스터 가문도 제국의 산하로 들어왔다.
이것으로 리건령으로 갈 수 있게 되었어. 결국 클로드와 대결을 하는군.
하핫, 그럴 리가. 클로드와는 오랜 호적수, 바라던 바야.
그러길 바라. 나와 클로드는 오랜 호적수, 쉽게 져 주면 곤란해.
그는 책사야.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더러운 수법을 산더미처럼 준비해 놨겠지.
선생님도 방심했다가는 걸려들고 말 거야. 그 녀석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다음 상대는 클로드인가아…… 한동안 얼굴을 못 봤는데, 잘 지내려나아.
나, 선생님을 믿고 이리로 왔지만, 클로드가 싫은 건 아니거든.
글쎄. 연회를 좋아했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잔치다~! 라면서.
응, 그렇지. 클로드는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녀석이었거든.
그 녀석과 싸우는 건 별로 상관없지만, 되도록이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친구와 싸우는 건 괴롭네요……
저도 처음에는 금사슴반이었으니까요. 추억도 이것저것 있고……
……아뇨, 망설임은 없어요. 저는 선생님과 함께 싸우기로 결심했으니까.
……선생님도 그렇군요.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그게 제일 좋겠지만……
친구이기 때문에 더더욱, 남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어요.
제 미래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까……
친제국파 제후가 완전히 이탈한 이상, 동맹군에 승산은 거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상대는 그 클로드니까요……
네.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도 못할 발상으로 상대방을 농락하는 것이 클로드이니까.
그렇게 믿고는 있지만, 방심할 수는 없어요. 클로드는 분명 무슨 짓을 해 올 거예요.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이번만큼은 고전하실지도 몰라요.
상황은 이쪽이 유리한데도, 클로드씨는 항복하려 하지 않는군요……
왜일까요……
그와 에델가르트씨의 이상은 그렇게까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것이겠죠, 분명.
아주 강한 사람들이라는 건, 동시에 서투른 사람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동맹령 출신이지만, 평민이니까. 동맹 제후와 싸우는 것에는 별 생각 없어.
하지만, 싸우는 상대가 아는 녀석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고 해야 하나……
아아, 안 되겠어. 싸우기 전부터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자꾸 생각해 버려.
용병은 바보여야 한다! 고 스승님께 배웠지만, 좀처럼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네.
여기서만 하는 이야기다만…… 제국군에 협력 중인 조직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야수를 조종해 전력으로 만드는 기술…… 그것의 출처는 그들이라네.
물론 그 기술에 문장석의 힘이 연관되어 있다는 건 틀림없는데……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들은 알고 있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의 목적은 도대체……?
……에델가르트는 협력하면서도 적개심을 감추려 하지 않아.
언젠가 그들과 싸울 날이 오게 되는 건 아닐지……
혹시 사신기사 기억해? 날 찔렀던 남자 말이야.
실은 그 사람 지금 제국군의 장수로서 서쪽…… 왕국 대항 전선을 이끌고 있거든.
딱 한 번, 가르그 마크에 찾아왔길래 내가 득달같이 따지고 들었는데……
……순순히 사과하더라고. 나도 맥이 풀려 버렸지, 뭐.
……도대체 뭐였을까. 저 가면 아래엔 뭐가 있을까.
어머나~ 어서 와, 선생님.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딱히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치유를 원해서 날 찾아온 거야?
역시 그렇구나. 물론 대환영이야. 당신을 치유해 주는 것도 내 일이지.
괜찮아, 부끄러워하지 마. 당신을 치유하는 것도 내 일인걸?
몸의 고민이든, 사랑의 고민이든…… 내가 뭐든지 상담해 줄게.
그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경험이 있는가?
그런가. ……뭐, 사람이라면 누구나 후회하고 고뇌하는 법이지.
핫핫하, 역시 단장님의 자녀로군. 그대의 그런 점을 본받고 싶은걸.
그대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난 그 선택을 믿고 따라가겠네!
클로드라…… 또래 학생들 중에서도 유달리 머리 회전이 빨랐더랬지.
그리고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달까, 포드라에선 파격적인 녀석이었어.
레아씨나 디미트리 왕과는 다른 의미로 적대하고 싶지 않아.
그래, 뭐. 그 밖에 선택지가 없다면 별수 없지.
최근엔 왕국과 세이로스 기사단에서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희가 디아도라를 공격하는 것을 잠자코 지켜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니 이번 달은 경비병을 배로 늘려 경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가르그 마크를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제 사명이니까요……!
오라버니도 참, 의욕이 넘치신다니까. 걱정돼서 눈을 뗄 수가 있어야지……
……앗, 죄, 죄송해요!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이번 달엔 디아도라로 가신다 들었어요. 여러분, 아무쪼록 무운을 빌겠습니다!
5년 전, 이곳의 공략 전투에서 함께했습니다.
그 뒤로 승진하여 지금은 일군을 이끄는 장수가 되었지요.
이번 동맹 침공에서는 보급선 유지와 고네릴 영지의 통솔을 맡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함께 디아도라로 향하진 못하지만……
에델가르트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오늘도 이상 없습니다!
디아도라는 "물의 도시"라는 이명을 가진……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듯한 거리와 커다란 항구가 특징인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즐거운 여행이 되었을 테지만…… 무운을 빌겠습니다!
뭘 숨기랴, 난 세이로스 기사단이었어. 하지만 대사교를 따를 수 없게 되었지.
남들 몰래 달아나…… 제국군이 되어 싸울 것을 결심했어.
알로이스님도 합류하셔서…… 든든해.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거든.
귀하가 사라진 뒤로 대사교는 사람이 변해 버렸어.
무언가에 홀린듯 웃고 알 수 없는 소릴 하고…… 하아……
여기서는 얻을 수 없는 물건도 지하에 가면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가르그 마크의 지하를 모르신다고요? 그곳은 지상에 머무르지 못하는 이들의 낙원이죠.
어비스 녀석들…… 매일 문제나 일으키고 말이야.
차라리 가르그 마크의 지하를 통째로 소탕해 버리면 좋을 텐데……
동맹령의 동쪽, 포드라의 목을 지나면 거기서부터 팔미라의 영토가 펼쳐집니다.
동부 국경에 인접한 고네릴 가문에는 동맹 제일의 무용을 자랑하는 홀스트 경이 있습니다만……
팔미라인의 파수꾼을 사명으로 여기는 그가 고네릴 영지를 떠나는 일은 없을 테지요.
우리가 전장에 나가진 않아도 마음만은 함께 싸우고 있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테니 당신도 마음껏 싸워 달라고.
장사하는 김에 왕국의 정세나 살필까 싶어 추위에도 북쪽으로 발을 옮겼습니다만……
어느 곳으로 향하든 국경이 봉쇄되어 있어 입국이 불가능했습니다.
무장한 왕국병이 험악한 얼굴로 감시 중이라 분위기가 아주 삼엄했습죠.
동맹령 남부에 영지를 가진 글로스터 가문과 코델리아 가문……
그들은 친제국파로 알려져 있으니 행군을 방해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동맹군의 병사도 얕볼 수 없는 실력이었습니다. 사기도 높아 보였지요.
다음에 공격할 디아도라는 동맹의 거점입니다. 이쪽이 우세하지만, 방심해선 안 되겠습니다.
5년 전, 제국의 교단 관계자 대다수는 동맹령의 동방 교회로 이동했습니다만……
그들의 태반은 이미 왕도 페르디아로 이동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동방 교회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동맹의 위기를 알아채곤 피난한 것이겠지요.
난적을 이기기 위해선 상대를 알아야 한다. 자네는 동맹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올바른 명칭은 레스터 제후 동맹령이며 레스터 지방의 전영주가 가맹하고 있다.
동맹에서는 정기적으로 원탁 회의가 열리고 합의에 의해 운영 방침이 결정되는데……
회의의 의결권은 5대 제후만이 갖고 있지. 고네릴 공작가, 글로스터 백작가……
코델리아 백작가, 에드먼드 변경백가, 마지막으로 맹주인 리건 공작가.
참고로 그들의 작위는, 옛 퍼거스 왕국이 수여한 작위를 근거로 하고 있지.
동맹도 약 300년 전까지는 퍼거스 신성 왕국의 일부였으니까 말이야.
굶주린 영웅은 범인도 이길 수 없다……는 격언 아시나요? 뭐, 제가 만든 말이지만요.
공복일 때는 본래의 실력이 안 나오니 배를 든든히 채워서 체력을 길러 주세요.
하아아…… 휴베르트 녀석 진짜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엄청 혹사당했어. 동맹 제후의 회유에는 귀하의 협력이 필수 불가결입니다, 라면서.
……보면 알잖아. 이렇게 혹사당한 건 오랜만이야.
뭐, 마땅찮긴 하지만 불만은 없어. 이기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일해 주지.
나도 어떤 의미에선 장사꾼이나 마찬가지니까. 손해 보는 거래에는 응하지 않거든.
디아도라에 고네릴 군이 합류했다고……? ……쳇.
어이쿠, 왔냐? 미안, 정보 확인에 정신이 팔려서.
눈치 한번 빠르구만.
고네릴 공은 디아도라의 수비에 힐다를 보냈다는 모양이야.
그 녀석은 내 친우의 여동생인데…… 최악이야. 목숨만이라도 살려야……
오~홋홋홋홋! 미르딘대교를 함락시켰군요.
동맹은 귀족들의 집합이라지만 결국엔 서로의 발목만 잡을 뿐이에요.
에델가르트님께서 즉위하시기 전의 제국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것이 저희 가문이 멸문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하피는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서 마을을 나왔는데……
어째 가는 곳마다 전쟁이 목적이라 헛웃음이 나와.
아쉬운 대로 풍경이라도 구경할까. 전쟁을 얕보지 말라며 혼날 것 같지만.
……앗, 위험했어. 하마터면 한숨이 나올 뻔했다고.
용건이라도 있나……
섞을 말은 없다…… 검이라면 섞을 수 있지만…… 그만두지.
그럼 물러나라…… 내 안에는 널 베고 싶어하는 내가 있으니까……
……너를 베지 말라고 하니 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베지 않겠다……
어머, 선생님. 요즘 어때? 벌이는 잘되어 가?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래 봬도 일하는 중이라서. 미안.
사방이 뒤숭숭해서 행상인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얼른 다들 웃으며 장사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어비스? 선생님, 그런 곳에 흥미가 있어?
가르그 마크의 지하에 펼쳐진 고대 유적…… 그게 어비스야.
멋대로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짐작대로 저마다 사정이 있는 사람뿐이지.
제대로 된 상인은 접근하지 않는 곳이니까 선생님도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이곳은 오늘도 이상 있습니다.
다음은 디아도라인가요? 그립네요…… 저, 그 마을 출신이거든요. 좋은 마을이었죠.
어, 선생님이시군요. 저는 휴베르트 각하의 부하입니다.
교단이 이곳을 이용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주민들 사이에 섞여 감시하고 있죠. 이건 비밀이에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군인들도 참 힘들겠네요.
예전에 마을에서 신병을 모집했었는데, 밥에 눈이 멀어 지원하지 않길 잘했어요.
천천히 죽음을 향해 가는 것 같긴 해도 저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거든요.
저번 전투에서 발을 다쳤어. 갈 데도 없어서 여기로 와 버렸지.
당신도 조심해. 세상엔 터무니없는 실력자들이 많으니까.
……! 당신은 제랄트님의…… 그렇군요…… 어머니를 많이 닮았네요.
당신의 부모님과는 안면이 있습니다. 당신과도 꼭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지요.
보잘것없는 수도사입니다. 당신의 부모님과는 안면이 있지요.
그러나……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수도원을 잠시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만.
그녀의 묘지에 바칠 꽃을 대신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신이 준비한 꽃이라면 그녀도 분명 기뻐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아아…… 이 꽃은 그녀가 생전에 좋아하던 꽃입니다.
……이제 여한이 없군요.
자, 저는 슬슬 가 보겠습니다 벨레트 선생님, 부디 건강하시길.
그녀의 몫까지 제랄트님을 소중히 해 주십시오.